두티만
착잡한 마음을 잠시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아침이 다가왔다는 첫 신호인지 파리 떼가 윙윙대기 시작했다.
인만의 목에 생긴 길다란 상처와 눈가로 몰려든 파리의 날갯짓 소리와, 파리의 다리로 전해지
는 간지러운 감촉은 무리지어 울어대는 장닭들의 소리보다 사람을 깨우는 데 더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병원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인만은 손으로 파리를 쫓으며, 침대 발치 너머로 활짝 열려 있는 3중창을 바라보았다. 밝은 낮
이었다면 보통 붉으레한 색조를띤 행길과 우뚝우뚝 서 있는 참나무들, 낮은 벽돌담, 그리고 널따
란 들판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서쪽으로 지평선을 향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였을 터였다.
평지치고는 꽤 넓은 들판이었다. 주변에 언덕이라고는 이병원이 있는 자리밖에 없었다. 창 밖을
내다보기엔 아직 어두웠다. 창문은 차리리 회색빛으로 칠해져 있는 듯했다.
주위가 너무 어둡지 않았더라면, 인만은 아침을 먹을 때까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
다.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은 그의 걷잡을 수 없이 . 하지
만 어젯밤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느라고 남아 있던 양초를 모두 태워 버린 뒤였고,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병실 불을 밝힐 만큼 램프불 기름도 넉넉하진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가 늘어서 있는 어두운 방과 여기저기 다친 몸을
고통스럽게 지탱하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등받이가 사다리 모양으로 된
의자에 걸터앉았다. 다시 한 번 손을 내저어 파리를 쫓으면서, 창문너머로 안개 낀 새벽의 첫 풍
경을 바라보며 인만은 어둠이 걷히고 사방이 밝아 오길 기다렸다.
창문은 출입문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인만은 그 창문을 밀고 다른 세상으로 걸어나가 그곳에
머무는 공상을 자주 하곤 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해 있던 몇 주 동안은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었
기 때문에, 줄곧 창 밖만 내다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푸른들녘을 떠올리곤 했었다.
수정란풀이 자라던 질퍽한 시냇가, 가을이면 갈색과 검은색 벌레들이 즐겨 찾던 목초지의 한
귀퉁이, 좁은 길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히커리나무...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소떼를 몰고 마굿간으로 향하는 어버지를 내려다보곤 했었다. 소떼가 나무 아래로 지나갈
때면, 인만은 눈을 감은 채 먼지 날리는 길 위를 떼지어 걷고있는 소들의발굽 소리가 점점 희미
해지다가 마침내 여치와 청개구리 소리에 묻혀 사라져 가는 것을 가만히 듣곤 했었다. 창문은 분
명 인만에게 과거를 회상하게 해 주었다.
이미 살벌하기만 한 세상을 경험했고, 그 경험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면 그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이 실종되거나 도망쳐 버린 세상밖에 떠올릴 수 없었
던 인만에게, 그런 회상은 그다지 싫지 않은 일이었다.
밤낮으로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날씨가 계속되어 마치 젖은 수건을 입에 대고 숨을 쉬는 것같았
다. 침대보도 금세 축축해지곤 했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책에도 하룻밤 사이에 검은 곰팡이가 생
기곤 했다. 그는 이런 관경을 늦여름 내내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나 인만은 그동안 지나간 시절의 모습들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홰색빛 창문도 이제
그 역할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 그 창문은 그
가 잊고 있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 주었다.
어린 시절 학교 교실에 앉아 창밖에 펼쳐져 있는 목초지와 녹색으로 뒤덮인 작은 산등성이들이
층층지어 콜드 마운튼의 장대한 봉우리로 이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9월이었다. 발자국이 어지러이 나 있는 학교 운동장 너머로 허리 높이까지 건초밭이 자라 있었고,
베어 낼 시기가 됐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풀 끝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인만의 선생님은 통통한 체격에 머리는 좀 벗겨졌고 얼굴은 늘 홍조를 띤 땅딸막한 사람이었
다. 후줄그레한 검은색 정장 한벌과 , 앞코가 말려 올라간데다 너무 낡아서 굽이 거의 다 닳은 커
다란 정장용 구두 한 켤레가 그가 가진 것의 전부였던 듯했다. 아침내내 그 선생님은 구두 끝으
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교단에 서서 고학년 학생들에게 고대 영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잇는 중이었다.
한동안 억지로 선생님의 말을 외면하고 있던 어린 인만은 책상밑에서 모자를 꺼내 챙을 잡았
다. 손목을 한 번 휙 젖히자, 모자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 한참 위로 치솟더니 운동장을 넘어 목초
지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모자는 마치 땅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까마귀 그림자처럼 검게 보였
다. 인만은 피터스버그 교외에서 벌어진 한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옆에서 싸우던 전우 두명이
그에게 달려와 옷을 벗겨 내고 목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엄숙하게 작별을 고했었다. 더 나은 세상에서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하지만 인만은
야전병원으로 후송될 때가지 살아남았다. 병원에서도 의사들은 인만의 전우들과 똑같은 태도를
보이며 가망이 없어보이는 그를 그냥 그렇게 죽어 가도록 간이침대로 옮겨 눕혔다.
하지만 인만은 의사들의 예상과는 달리 쉽게 죽지 않았다. 이틀후 넘쳐 들어오는 부상자들로
병석이 부족해지자. 그들은 인만을 그 고향인 테네시 주에 있는 한 일반 병원으로 보내 버리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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